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리뷰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리뷰

이상적인 근대적 세계관 속에서 당신은 당신만의 의미와 근원을 자유롭게 찾고, 당신이 선택한 가치를 근거로 당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신은 해방감을 느끼는 대신 공허함에 시달린다. 당신은 앞선 세대보다 더 열심히, 더 똑똑하게, 더 효율적으로 일하지만, 왜 그렇게 열심히 밀어붙이는지는 스스로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당신의 지루한 노동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인가? 당신은 작가 팀 크라이더가 말한 “바쁜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렸다. “바쁨은 일종의 실존적인 안심으로, 공허함을 막는 대비책으로 기능한다. 즉 당신이 그렇게 바쁘고 일정으로 꽉 차 있고 종일 다른 사람들의 요청이 밀려든다면, 당신의 인생이 바보 같거나 시시하거나 무의미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당신은 홀로지내기에서 파생되는 위험과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기분을 유지하려고 뭐든지 다 한다. 이는 철학자 이도 란다우가 지적한 근대적 인간의 이상한 상황을 설명한다. “많은 사람이 일생에 걸쳐 무엇이 자신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줄지를 고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어느 식당에 갈지 또는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데 쓴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함이 찾아왔다

핀란드는 우리가 연구를 통해 삶의 만족도에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 사회적 요인들,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발버둥 칠 필요가 없음, 광범위한 사회 서비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정부에 대한 신뢰 등이 월등하게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이런 결과는 전혀 놀랍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이 행복의 약속은 항상 손에 닿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쾌락의 쳇바퀴에 중독되어 있다. 척 팔라닉이 <파이트 클럽>에서 썼듯이 “젊고 원기 왕성한 남성과 여성들은 무언가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싶어한다. 광고는 이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자동차와 옷을 사게 만든다. 세대가 바뀌어도 젊은이들은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기 위해, 자신이 증오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성찰은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유의미함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해준다. 철학자 안티 카우피넨은 “인생은 과거를 토대로 삼음으로써 일종의 진보하는 서사의 형채를 갖추게 된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고립된 일화들로 구성된 인생보다는 더 유의미한 것 같다. 신경심리학자들도 같은 의견이다.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에리히 프롬은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현대인들이 굴레와도 같았던 “개인주의 이전 사회의 예속에서 자유로워졌다”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해방을 자아실현이 가능한 자립적인 개인으로 진화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며 축하했지만 상황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통문화의 기틀은 때로 굴레가 되기도 했지만 인간에게 안정감,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 방향감각, 의미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 전통문화의 기틀은 인간에게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는 확고한 기분을 선사해왔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기틀이 사라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인생이 가치 있어지는지를 알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새롭게 해방된 문화는 적절한 또는 위로가 되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이는 많은 사람에게 불안과 고립감, 근심, 방향 감각의 상실은 안겼다. 해방이 실현되어야 했지만 대신 그 해방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종속되어, 사람들은 어떤 권위자든 인생의 큰 질문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기꺼이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그러므로 그들을 그토록 절박하게 필요로 하던 안정감에 몸을 던졌다.

프롬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인은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자유를 온갖 종류의 독재자들에게 갖다 바치거나, 스스로를 잘 먹고 잘 입는 기계 안의 작은 부품으로, 그러므로 자유인이 아니라 로봇같은 존재로 전락시켜 자유를 잃어버리기 쉽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우리가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유

인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등장, 도시화, 이동성의 증가, 산업화, 민주주의, 정부의 관료화 같은 다른 원인도 있지만 전근대기의 마법에 걸린 우주를 겉으로나마 마법에서 깨어난, 무의미한 기계적인 우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과학적인 세계관이었다. 마법에 걸린 우주에서는 인간의 목적에 대한 질문이 합리적이었지만, 사물들의 거대한 질서 안에서 더 이상 인간에게 명백한 자리가 없는 기계적인 우주와는 맞지 않았다. 이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거대 질문을 던질 필요로 귀결되었다. 1834년에 토머스 칼라일이라는 한 남자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간단해 보이는 질문을 넌지시 던졌고, 그 이후로 우리는 전사회적으로 그 실존적인 후과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소명이라고 하는 기독교적인 개념 – 어떤 일을 하라는 신의 부름을 받았다는 식의 – 을 취해서 ‘신’의 자리를 ‘심장’으로 대체했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하는 한 가지 진정한 사명이 있는데, 대신 그것은 신이 당신에게 내려준 것이 아니라 당신 내면에 내내 숨어 있었다. 이 생각은 자기계발서용 구호 – 당신의 진정한 소명을 찾아라 – 같은 것이 되어버렸지만 안타깝게도 현실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인생의 의미와 관계 맺는 방식은 이렇다. 즉 낭만주의자들은 심장의 부름을 옹호하면서 본질적으로 우리 각자는 의미 있는 삶을 약속받았고, 따라서 우린 그걸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퍼뜨리고 있다. 심장을 따라가다보면 인생의 총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서 갑자기 제자리를 찾게 되고 바로 거기서 사명을 발견할 것이며, 그러면 당신의 인생은 명료함, 확실함, 유의미함이라는 감각으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영화 <몬티 파이튼의 삶의 의미>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마이클 페일린은 인생의 가장 큰 질문에 대답이 담긴 황금봉투를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받는다. 그는 봉투의 내용을 읽는다. “음, 그건 별거 아니다.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도록 노력하고, 가급적 지방을 적게 섭취하고, 가끔 좋은 책을 읽고, 산책을 좀 하고, 출신 국가와 신념이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고 조화롭게 함께 살도록 노력하라.”

과거 성직자, 부족의 연장자, 공동체 지도자에게 주어졌던 사회적 지위는 자기계발 전문가,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인, 광고업자, 가짜 예언자 같은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낡은 세계관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이 교체를 신뢰하는 것은 고사하고 좋아하는지조차 자신이 없다.

인생 전반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인생은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하다는 말로 마무리가 되면 사람들은 절망하게 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인 의미는 없고,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인생에 부여한 의미, 개별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한 명 한 명이 개별적인 소설책 한 권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줄거리가 있을 뿐.

인생 안에서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것은 훨씬 개인적인 차원이다. 인생 안에서의 의미는 당신의 인생이 의미 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당신의 인생 안에서 의미를 경험하는 문제다. 그러므로 이는 어떤 보편적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어떤 가치, 목표, 목적을 개인적으로 발견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는 당신의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는 무언가를 찾아내거나 창조하는 문제다.

사실 인생에는 의미 있는 순간들이 가득하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좋은 친구를 만나 포옹하는 순간, 가족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순간, 당신이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어떤 취미에서 한층 실력이 좋아졌음을 알게 된 순간,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는 순간. 어떤 이론이나 합리적인 명분이 있어야 이런 순간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애쓰지 않아도 거기에 내재한 의미를 경험할 수 있다.

심판자의 관점이나, 완전히 맨땅에서 출발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 가치 있다고 경험하는 것에서, 기여할 만한 것에서 출발해 그 위에 쌓아올리는 것이 더 낫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 우주의 기원 같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에서 시작하지 마라. 대신 당신의 삶에 경험에서 시작하라.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시작하라. 최근 경험에 대해 잠시 성찰하라.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보다 더 의미 있었는가. 그리고 어떤 경험이 별로 의미가 없었는가. 지금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면 미래에 그런 경험을 더 많이 보장하는 선택을 하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당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라면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더 자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어떤 업무가 다른 일에 비해 당신에게 더 의미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 재주를 더 잘 이용하는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라. 자신의 인생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유의미함과 충만함의 감각을 키워라.

“그러므로 현재 경험의 의미를 증대하기 위해 행동하라.” 인생 안에서의 의미는 유의미한 경험과 관련된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우리는 지금 당장, 현재의 순간에 그 경험을 한다.

최고의 치유책은 빛이 아직 비추는 동안 남아 있는 하루하루, 한주 한주, 한해 한해가 그 값을 할 수 있는 방식의 선택을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것이다.

인생은 덧없다. 매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비법은 이 하나의 인생이 우리가 아는 한 당신이 가진 전부라는 점을 떠올리며 제한된 하루하루를 음미하는 것이다.

인생은 어째서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아주 좋은 질문이다. 음, 나는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좋다. 내 경우는 하나만 꼽자면 그루초 마르크스, 그리고 윌리 메이스, <주피터 심포니>2악장, 루이 암스트롱의 ‘포테이토 헤드 블루스’ 음반, 스웨덴 영화, 당연히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말런 브랜도, 프랭크 시나트라, 세잔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사과와 배들, 샘우식당의 게 요리, 트레이시의 얼굴… – 우디 앨런 <맨해튼>, 1979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