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리뷰 2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리뷰

과거에는 보통 문화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 가치 체계를 처방했다. 하지만 오늘날 당신은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게 자신의 가치를 선택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방향을 가늠할 때 우리는 그저 의식주 같은 육체적 필요를 충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인생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추구한다. 자신을 표현할 기회, 기술을 배우고 활용할 기회,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다고 느낄 기회 등등. 인간은 단순한 생존에 안주하지 않는다.

자기 결정 이론은 기본적인 심리적 필요로 다음 세 가지를 꼽는다. 자율성, 유능감, 관계 맺음이다.

자율성의 필요에는 진정성과 자기표현을 중시하는 태도가, 관계 맺음의 필요에는 소속감을 중시하는 태도가, 선의라는 잠재적 필요에는 기여를 중시하는 태도가 수반된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법에 대한 길잡이를 찾을 때 나의 제안은 이 네 가지를 따라가라는 것이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의미 있는 삶을 회복하는 자기결정의 4가지 도구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관계 맺음

인생의 의미는 잊어라.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일 때 당신의 인생은 당신에게 의미 있어 진다. 가령 친구를 돕거나, 사랑하는 이와 특별한 순간을 함께한다거나, 간단하게는 선량한 철학자에게 아주 필요한 맥주를 한잔 사줌으로써 그와 관계를 맺는 식으로 말이다.

인생의 중심을 내가 아닌 우리로 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심리학자들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아 속에 다른 사람을 포함시키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자신만을 존중하고 만사를 자기 이익의 문제로 치환하는 사람은 절대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 세네카, <편지>, 65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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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동안 유지되던 우리 선조들의 근친 공동체는 잃었을 수 있지만,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함께 개성을 꽃피울 수 있는 공동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우리 인생을 – 그리고 자녀와 증손자녀의 인생을 – 더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형태의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의미는 관계 맺음에서 온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선의

우리는 아무리 지루한 업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어쩌면 훨씬 열렬한 지루함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연구를 비롯한 여러 심리학 연구는 당신의 인생에서 의미를 느끼려면,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낄 방법을 찾으라는 간단한 결론을 가리킨다.

소소한 친절이 그들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었고, 관계 맺음과 유의미함이라는 따뜻한 기분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돕는거라는 점을 아주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분명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을 하루에 여덟 시간 또는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할 정도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이미 의미 있는 인생의 원천을 자기 삶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자기 일의 선한 영향력을 그저 되짚기만 하면 된다.

싫다고 말하지 못해서 누가 부탁을 할 때마다 돕는 것은 당신이 정말로 돕고자 하는 누군가를 전략적으로 선택해 돕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많은 실험에 따르면 동기가 자율적인 도움은 돕는 사람의 안녕을 향상시키지만, 억압이나 강제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자율성

우리는 진정성의 방향을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진정성이란 인생 경로가 자신이 정한 방향과 선택에 따라 흘러간다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는 인생 안에서 의미를 느끼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

철학자 로렌스 베커는 이보다 훨씬 강력하게, “자율적인 사람의 인생에는 가격을 넘어서는, 측ㄹ정과 비교가 불가능하고 한계가 없는 위엄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톨스토이는 인간의 활동을 이끄는 데 있어서 자기표현의 힘을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 안에서, 내가 써내려간 거의 모든 것 안에서, 나를 이끈 것은 서로 연결된 생각들을 엮어서 자기 표현을 완수해야 할 필요였다.”

전반적인 결론은 자율성이 행위의 결과 – 동기가 자율적인 사람들은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높다 –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에 대한 충족감이 높고, 더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활력과 에너지를 더 많이 느끼는 등 전체적인 만족도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성이 최대로 표현되면 사람은 호기심과 생기, 자기 동기를 가진 존재임이 확인된다. 인간은 최상의 상태일 때 주체성과 영감에 따라 움직이고 배우려고 노력하며, 자아를 확장하고, 새로운 기술을 통달하고, 자신의 재능을 책임감 있게 활용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여지가 있다. 그 여지 안에는 반응을 선택할 우리의 힘이 있다. 우리의 반응 안에는 우리의 성장과 자유가 있다. – 스티븐 코비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1995

사람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완전히 통제된 환경에서는 잘 지내지 못한다. 일터문화가 억압적일 경우 노동자에게 억압에 더 잘 적응할수 있게 도와주는 마음 챙김 기법을 가르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자기 표현이 여지를 확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을 재설계하는 것이 해법이다. 사회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우리는 개인이 자신의 생각속에서만이 아니라 행동 속에서 진정성과 자율성을 경험할 수 있는 맥락과 조직,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유능감

철학자 존 롤스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이 발견한 능력(선천적인 혹은 훈련된 능력)의 실행을 즐기고, 이 즐거움은 더 많은 능력을 깨닫게 하거나 그 능력의 질을 향상시킨다.”

게으름은 기술 습득 보다 나쁜 생존 전략이다. 그러므로 진화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잘하는 데서 더 나은 기분과 만족감을 느끼고 새로운 기술을 학습할 기회를 물색하는 강력한 동기를 심어놓았다. 학습과 개인적인 성장은 높은 만족과 참여의 근원이고, 우리 인생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통달한 활동에 몰두할 때는 거기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바깥세상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실제로 40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중 약 400명이 “인생을 건 투쟁”이 의미의 근원이라고 언급했다. 그 후로 나는 통달과 도전이 인생 안에서 의미를 제공하는 중요한 근원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령 직장에서 더 높은 역할로 승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특정 기술을 갈고닦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을 준비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리고 직장 밖에서 통달 또는 배움의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몇 가지 재미있는 취미를 반드시 갖도록 하자.

인생 안에서의 의미는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회적 충족)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개인적 충족)에 관한 것이다.

당신이 인생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당신 자신과의, 그리고 당신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들, 가치, 관심사와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각한 실존 위기에 시달리던 톨스토이는 깊이 파고들다가 자기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게 뭔지를 분명히 밝히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을 이 세상에 붙들여매주는 “두 방울의 꿀”덕분에 우울함을 안기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와 자신과의 관계였던 것이다.

프로젝트 식 접근 법의 문제점은 인생이 도구화된다는 것이다.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거머쥐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을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이야기라고, 당신이 접하는 것, 경험하는 것, 목격하는 것, 표현하는 것을 완전히 독창적으로 구성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자. 당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직접 선택한 일이든 외부에서 주어진 일이든, 그것은 여전히 그 이야기의 일부다.

이야기는 경쟁이 아니다. 이야기는 그저 펼쳐진다. 사람들에게 행동을 요구한다. 등장인물들에게 선택을 하라고 간청한다. 우리는 성찰적인 존재로서 좋은 이야기를 사랑하고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도덕적인 교훈과 사회적인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이야기를 이용한다.

유명한 선불교 사상가인 앨런 W. 와츠는 이 아이디어를 확장해서 , 인생을 음악에 비유한다. 그는 음악에서는 작곡의 끝을 작곡의 핵심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어떤 노래를 연주할 때 그것을 더 빨리 연주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도 아니다. 음악에서 의미 있는 것은 끝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인생을 마지막에 진지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나 순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은 성공이든 뭐든, 어쩌면 사후의 천국 같은 그 마지막의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되고 말았고, 거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핵심을 놓쳤다. 인생은 음악과 같은 일이고, 그러므로 당신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노래를 하거나 춤을 췄어야 했다.” 어느 날 음악은 끝날 것이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침묵을 기다리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아직 음악이 당신을 위해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가서 춤에 몸을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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